최근 일본주식 상승세가 심상치 않습니다. Topix지수(도쿄 증권거래수 제1부에 상장된 모든 기업의 시가총액 가중지수)는 30년 만에 최고치를 찍었으며, 니케이 지수는 최근 한 달동안 7.75%가 오르면서 주요국가 주식지수 중에선 가장 많이 상승했습니다.
워런버핏의 일본주식 투자소식과 외국 기관들의 이례적인 6주 연속 매수, 기업실적 개선, 디플레이션의 탈출과 인플레이션의 시작, 상대적으로 낮은 환율 등 여러가지 배경들을 원인으로 말할 수 있는데요. 국내에서도 일본주식 투자가 크게 상승하는 분위기입니다.
최근 일본주식 상승배경과 랠리 지속성 등에 관한 정보와 개인적인 견해를 정리했습니다. 아래 내용은 특정 종목에 대한 매수/매도 추천이 아님을 꼭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33년 만에 최고치를 찍은 일본주식지수
▣ 일본 경제 및 주식시장 히스토리
일본주식 투자를 검토하신다면 일본 주식과 부동산 시장의 역사를 간략하게라도 이해하실 필요가 있습니다. 위에 있는 그래프는 1985년부터 현재까지의 Topix지수의 변화를 보여주는데요. 정말 메이저한 이벤트들은 아래와 같습니다.
- 1989년 시장 거품 붕괴 시작: Topix지수는 GDP의 150%까지 상승했고, 부동산과 주식시장의 호황이 끝나기 시작하는 시기입니다. 은행은 담보의 100%까지 대출을 지원해 담보대출로 부동산을 무한히 매입하는 투자방식이 유행이었습니다. 시장 거품이 심각해지면서 1990년도에 일본중앙은행은 주택담보대출 억제정책을 시작했고 정책금리를 2.5%에서 6%로 2배 이상 상승시켰습니다. (일본의 '잃어버린 10년'의 시작점이기도 합니다.)
- 2002년 기업들의 대차대조표 조정완료: 채무불이행자가 급증하면서 일부 은행들이 도산했고, 전체 대출의 10%정도가 채무불이행으로 사라졌습니다. 2000년대 초반 IT버블로 인해 주가지수가 잠시 상승했으나 다시 하락했습니다.
- 2008년 금융위기: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야마토 생명보험사가 파산합니다. 일본주식은 다시 최대 급락상황을 맞이하게 됩니다.
- 2013년 아베노믹스 시작: 심각한 디플레이션으로 인한 경기침체를 막기위해 무제한 양적완화, 공공사업 확대 재정정책, 민간투자 촉진을 유도하는 아베노믹스가 시작됩니다. 이 시점부터 현재까지 일본 기준금리는 0%를 유지하고 있으며, yield curve정책을 쓰고 있습니다만 거의 무제한 국채자산을 매입하고 있습니다.
▣ 최근 1개월 가장 많이 상승한 일본주식지수
닛케이 지수는 최근 1개월 간 약 7.6% 상승하면서 주요 주식지수 중에선 가장 크게 상승했습니다. 나스닥도 5%이상 상승했으나 상대적으로 낮았고 한국, 중국, 유럽, 미국 지수들과 모두 비교했을 때에도 닛케이 지수 상승이 가장 높았습니다.
뱅크 오브 아메리카는 일본 지수가 앞으로 33% 더 상승여력이 남아있다고 평가했으며 국내에서도 일본주식 투자자금이 크게 늘어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투자자금이 일본으로 쏠리는 것은 주가상승도 있습니다만, 현재 950원대의 낮은 엔화환율에 대한 기대감도 있습니다. 나중에 주가상승과 함께 환율차익까지 얻으려는 목적이란거죠.
가장 많이 투자한 종목은 종합상사인 마루베니였으며, 워런버핏이 투자한 종합상사들이 대부분 상위권에 올랐습니다. 그 외에는 제약기업인 다이이찌산쿄와 스포츠용품 기업 아식스 등이 있습니다.
일본경제의 어떤 점이 좋아진다는걸까?
최근 일본경제 관련 기사에서 중복 언급되고 있는 데이터와 주식시장이 상승하는 근거들을 찾아봤습니다. 실제로 관심이 가는 정보도 있지만, 아직은 다소 과장된 해석들도 있었는데요.
▣ GDP와 무역수지 상승
일본 1~3월 1분기 GDP는 전분기 대비 0.4%, 전년 동기 대비로 1.6% 증가했습니다. 최근 3분기 만에 처음으로 플러스 성장을 했으며, 4분기 연속으로 성장하고 있는 개인 소비지출 성장이 이를 견인했는데요. 하지만 그래프에서 보시는 것처럼 GDP가 그렇게 인상적으로 성장한 것이 아니고, 아직은 GDP성장에 연속성도 없습니다. 여러 기사에서 소개된 것처럼 일본경제가 성장을 시작했다고 보기엔 어려운 데이터인 것 같습니다.
일본 무역수지는 21개월 연속 적자를 기록했습니다만 무역적자 규모는 그래프에서 보시는 것처럼 크게 감소하고 있습니다. 최근 에너지 가격이 하락하고 코로나 종료 이후 되살아나고 있는 자동차 및 전자제품 수출회복이 원인이라고 합니다. 더불어 최근 급증하고 있는 일본 여행객 증가도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확실히 적자규모가 감소하고 있는 것이 명확해 보이며, 2023년 중에 무역수지가 흑자전환한다면 주식시장에도 상승여력을 제공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지금 상태에서 무역수지가 지속 개선될 것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 인플레이션과 임금상승
일본은 계속되는 디플레이션으로 인한 경기둔화 상태였기 때문에 일정 이상의 인플레이션을 원합니다. 2022년 전세계가 금리인상과 긴축을 하는 상황에서도 일본은 양적완화정책을 고수했는데요. 보시면 근원 인플레이션 지수는 벌써 13개월 째 일본 중앙은행의 목표치인 2%를 상회하고 있습니다.
다만, 위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에너지 가격이 최근 하락하는 추세라 인플레이션율은 다시 하락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때문에 일본 중앙은행도 아직 금리인상 및 양적긴축 정책을 펼칠 시기는 아니라 판단하는데요.
또한 일본이 아직 금리인상을 하지 않는 이유는 임금인상률에서도 찾을 수 있습니다. 일본은 십여년동안 디플레이션 상황에서 임금이 거의 상승하지 않았습니다. 4월에도 임금인상률은 전년대비 0.8%인데, 이것은 근원 인플레이션율인 3.4%보다 많이 낮습니다.
일본은행은 일본내수가 확실히 살아나 인플레이션 상승을 주도하고, 높은 임금 상승이 동반되지 않는 한 금리인상 및 양적긴축정책을 펼치지 않을 것이라 말했습니다. 일본이 10년이 넘게 진행해 온 아베노믹스는 아직도 진행 중이며, 일본은 낮은 금리와 환율기반으로 민간경제를 살리는 정책을 아직 명확히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경제기사에서 언급되는 일본경제가 다시 살아난다는 데이터들은 하나씩 뜯어보면 아직은 활성화 시작단계이거나 검증기간이 더 필요한 부분들이 많습니다. 이런 데이터들만으론 지금부터 일본경제가 다시 살아난다는 보장은 없어보이는데요.
지정학적 이슈를 기반으로 살아나는 일본 투자
일본의 경제 데이터보다 현재 미국과 중국 및 러시아와의 지정학적 대립관계로 인해, 일본이 아시아 지역투자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는 내용은 확실히 동의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몇 가지 사실들을 살펴보겠습니다.
▣ 워런버핏의 일본투자
최근 워런버핏이 TSMC투자를 2분기 만에 철회하고 일본의 대표적인 무역회사 5곳에 투자를 시작하면서 일본주식이 조명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버핏은 TSMC가 놀라운 회사지만 지금은 대만보다 일본에 자본을 배치하는 것이 마음이 편하다고 말했습니다.
버핏이 일본기업에 투자를 시작한 이유를 직접 밝히지 않았습니다만, 많은 투자자들이 일본기업의 기업지배구조 개선 노력이 결실을 맺고 있고, 주주 행동주의가 부상하면서 자사주 매입과 배당금지급이 증가하고 있으며, 저평가된 기업들이 많다는 점을 손꼽고 있습니다.
버핏이 투자하는 일본기업에 대해서는 별도 포스트로 정리했으니 아래 링크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 삼성, TSMC, 마이크론, 인텔 등의 일본 투자
최근 글로벌 반도체 업체들이 일본에 투자한다는 기사들이 연이어 발표되고 있는데요. 대만 중심의 미중갈등이 커지면서, 직접적으로 중국과 아시아 지역을 공략하기 어려운 글로벌 반도체 업체들이 일본을 전진기지로 선택한다는 해석이 많습니다. (우리나라는 직접적인 전쟁위험이 있는 곳이라 투자를 꺼리는 현실)
대만은 올해 2월 10조원 규모의 2번째 파운드리 공장 건설을 발표했고, 마이크론도 최근 5조원을 일본에 투자해 차세대 메모리 반도체를 생산하겠다는 내용을 발표했습니다. 삼성전자는 아직 연구소 수준이지만, 3천억원 규뮤로 반도체 시설을 투자하겠다고 발표한 상황입니다.
일본의 소부장 업체 기술력이 뛰어나다고 하지만, 이런 투자들은 충분히 우리나라에서 유치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을텐데 아무런 소득이 없다는 점이 많이 아쉽습니다. 워낙 정치적인 이야기라 자세히 언급하지 않겠습니다만, 최근 상황을 보면 점점 더 투자자금이 해외로 빠질 것 같다는 위기감이 있습니다.
아직 애매한 부분들
하지만 여전히 이런 모든 데이터와 투자사례들만으로 일본경제가 본격적으로 살아나기 시작했다고 보기 어려운 리스크들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리스크들을 정리해보면 아래와 같습니다.
- 일본도 우리나라와 비슷하게 대중무역 의존도가 큽니다. 일본 무역수지 중 중국의 비중은 20%가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최근 미국과 연대를 강화한 일본과 우리나라는 비슷하게 중국 무역수지가 감소할 수 있는 위험이 있습니다.
- 일본은 심각한 노령화 국가입니다. 일본도 우리만큼 출산율이 낮으며 노령화 정도가 매우 높습니다. 앞으로 경제인구가 급격히 감소할 수 있는 상황에서 경제성장이 이어질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 최근 일본에 투자하는 해외자금은 대부분 전체 인덱스를 매수하는 패시브 머니입니다. 해외자금이 정말 일본투자를 본격화했다면 일본이 상대적으로 높은 가치를 가지는 섹터나 기업을 찾아 액티브한 투자가 일어나야 하는데요. 인덱스에 투자된 자금은 쉽게 빠져나갈 수 있습니다.
- 주요 글로벌 펀드 매니저들은 여전히 일본에 대한 비중 축소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최근의 순매수 증가는 5~10년동안 지속된 매도물량에 비해 아직은 너무 작은 수준입니다.
개인적으론 미국이 중국과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해 아시아 지역에서 일본과 매우 타이트한 전략적 제휴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며, 미국이 원하는 것을 내어주는 대가로 일본은 당분간 미국에서 시작되는 여러가지 직접적인 혜택을 누릴 것이라 생각합니다. 최근 주식시장이 상승하는 가장 큰 원인도 이런 정치적 배경이 포함되었다 생각하는데요.
이러한 전략적 관계가 얼마나 오래 지속될 것인지는 전혀 감이 잡히지 않기 때문에 일본투자를 검토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아직도 망설여지는 부분이 많은 것 같습니다.
마무리
전세계적인 경기둔화 시점에서 일본이 상대적으로 좋은 경제지표를 보여주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일본이 이렇게 일시적으로 좋은 경제지표를 보여준 과거사례들이 많았습니다만 대부분 길게 이어지지 못했습니다. 그보다는 최근 미중갈등과 여러가지 지정학적 이슈에 대한 반사이익을 일본이 가장 많이 누리는 것 같습니다. 이런 현상이 얼마나 오래 지속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최근 일본 주식시장 및 경제가 살아나는 것은 조금 더 시간을 두고 지켜봐야 할 부분이 많은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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