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얘기를 자주 쓰고 싶지 않습니다만, 최근 달러강세와 엔화약세가 매우 심각합니다. 달러-엔 환율이 1달러 당 160엔을 돌파했는데요. 이대로면 1달러 당 170엔을 돌파하는 것도 시간문제가 될 수 있는 상황입니다만, 반대로 엔화환율로 돈을 벌 수 있는 기회도 엿볼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일본이 기준금리를 올려서 엔화환율을 방어할 가능성은 지극히 낮아 보입니다만, 일본이 보유한 막대한 외환자금으로 미국이 기준금리를 본격적으로 인하할 때까지 엔화환율을 임시방편으로 밀어 올릴 가능성은 꽤 높다고 생각하는데요. 정확한 시점을 알 순 없습니다만 2024년 하반기 중에는 꼭 한번은 기회가 올 거라 봅니다. (개인적인 생각)
오늘은 기존 글에서 적지 않았던 엔화환율과 관련된 데이터와 하반기에 발생할 수 있는 시나리오를 추가적으로 정리했습니다. 아래 내용은 개인적인 견해를 포함하며, 특정 종목에 대한 매수/매도 추천이 아님을 꼭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엔화환율 방어가 어려운 이유
기준금리를 올리기엔 일본은 빚이 너무 많다
일본의 1년 예산은 얼마나 될까요?
2024년 회계년도 기준 일본의 1년 예산은 112조 1천억 엔인데 우리 돈으론 약 974조 7천억 원정도입니다. 우리나라 1년 예산이 약 650조 원 정도이니 생각보다 일본의 연간 국가 예산이 우리보다 그렇게 크지 않습니다.
2024년 일본 세금수입은 약 69조 6천억 엔을 예상하는데, 나머지 34조 9천억 엔(약 303조 원, 전체 예산의 약 31% 비중)은 국채를 발행해서 빚으로 채워야 합니다. 일본은 대략 1년에 300조 원 정도의 새로운 빚이 생기고 있다고 보시면 될 것 같은데요. 2023년 말 기준 일본의 누적 부채는 약 1경 1,185조 원이며, 일본 GDP의 252% 규모로 글로벌 1위 부채 국가입니다.
2024년 기준 전체 국가 예산의 약 25%를 국채빚(만기 되는 국채의 원금상환과 이자지급)을 갚는 데 사용할 예정입니다. 위 그래프에서 'Servicing Goverment debt'이라 표시된 항목인데 2023년 기준으론 22%에서 1년 만에 3%가 늘었습니다. 그 사이에 기준금리는 0.1% p밖에 올리지 못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기준금리를 0.5%p까지만 올려도 국채 빚 예산비중은 30%를 쉽게 넘길 수 있습니다. 기준금리를 1%p까지 올리는 건 현재 일본의 부채규모에선 쉽게 상상조차 할 수 없습니다. 일본은 어떻게든 기준금리를 최소한으로 올리면서 시간을 끌다가 미국이 기준금리를 낮춰서 환율을 정상화시키는 것이 목표일 겁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환율을 방어할 수 있는 달러가 부족하다
일본이 이렇게 환율하락을 보기만 했던 것은 아닙니다. 일본 재무성은 4월 26일~5월 29일 약 한 달 동안 9조 8천억 엔 (약 86조 원) 규모의 외환개입을 실시했다고 5월 31일에 발표했는데요. 이건 2022년 10월 이후 1년 반만의 외환시장 직접 개입이라고 합니다.
일본 재무성은 4월 말부터 약 한 달동안 외환시장에 직접 개입했다고 합니다만 실제로는 4월 말에 직접개입이 집중되었습니다. 위 그래프에서 붉은 점선으로 표시한 영역인데요. 달러 당 160엔까지 엔화환율이 하락하자 일본 정부가 약 86조 원(약 620억 달러)을 풀었는데도 달러-엔 환율은 153엔밖에 상승하지 않았습니다.
더 무서운 것은 외환시장 직접 개입 이후 엔화가치는 지속적으로 하락해서 현재 다시 1달러 당 160엔을 위협하기 시작했다는 점인데요. 일본 정부(혹은 중앙은행)의 외환시장 직접 개입으로는 엔화환율 방어효과가 일시적이고 한계가 있다는 의미입니다. 또 다른 문제는 일본은 외환시장에 직접 개입할 달러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2024년 5월말 기준 일본의 외환보유액은 1조 2,300억 달러로 2021년 최대치 대비로는 약 2천억 달러가 감소했습니다. 최근에도 환율방어 목적으로 사용되어 외환보유액이 감소한 것을 보실 수 있는데요. 그렇다고 해도 이렇게 많은 외환이 남아 있는데 돈이 없다고 평가하는 것은 좀 이상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외환보유액의 약 95%인 1조 1,700억 달러가 미국 국채로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2024년 2월 말 기준으로 수치는 조금씩 달라질 수 있습니다). 일본은 전 세계에서 미국 국채를 가장 많이 보유한 국가 중 하나입니다. 현재 기준으론 일본이 바로 융통할 수 있는 현금성 달러자산은 약 700억~1,500억 달러 밖에 되지 않습니다.
달러 만약 일본이 환율방어 목적으로 미국 국채를 팔아 달러를 확보하게 되면 아래와 같은 다양한 문제점들이 발생합니다.
- 금융시장 불안감 조성: 미국 국채를 대규모 매도할 경우, 미국 국채 수익률이 급등하면서 채권 및 통화 시장에 불안감을 조성할 수 있습니다. 특히 미국 장기채 수익률은 여러 가지 금융 시장 이슈들과 밀접한 연관성이 있어서, 미국뿐 아니라 글로벌 대부분 주식시장이 폭락하고 신흥국들의 자본 수급이 지금보다 더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 외환 보유고 고갈에 따른 역효과: 미국 국채 매각을 통한 외환 개입은 일본의 엔화환율 방어능력에 한계치를 드러냅니다. 이에 따라 투기세력들이 환차익을 목적으로 투기를 환율에 개입하려는 시도가 늘면서, 일본 정부가 원하는 엔화가치 변동성 통제는 더욱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 경제적 효과: 엔화 강세가 성공한다고 해도 이에 따라 무역 수지는 악화됩니다. 일본도 우리나라만큼 수출 중심 경제라 엔화환율이 급등하면 경제에 악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언급된 내용보다 더 큰 문제점은 미국과의 갈등관계 조성입니다. 최근 미국과 일본 모두 정치논리가 경제논리를 우선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미국은 중국과의 갈등을 전면으로 드러내고, 인플레이션 감소법 등을 토대로 리쇼어링 및 자국우선주의로 경제체질이 바뀌고 있는데 이건 근본적으로 정치적 이념이 저변에 깔려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 미국 대선이 경제적으로 어느 때보다 중요하게 관심을 받고 있기도 합니다.
일본도 비슷한 상황입니다. 대표적으로 이번 라인 사태에서도 나타납니다만 집권층의 정치적 이념이 경제적인 관계까지 움직이는 시대가 오고 있습니다. 과거보다 일본이 미국과 더욱 가까운 관계를 맺고 여러가지 일들을 준비하는 것도 이런 맥락이라고 생각하는데요.
만약 일본이 미국 대선 전에 환율방어를 목적으로 보유하고 있던 미국 국채를 대량 매도하게 되면, 바이든 및 옐런 재무부 장관과 정면으로 대립하는 관계가 될 겁니다. 현재 여러가지 조사에서 트럼프 후보가 바이든을 소폭 이기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만, 아직 결과는 알 수 없는 시점이라 일본은 현재 미국정부를 적으로 만드는 정책을 펼치긴 매우 어려울 거라 생각합니다.
일본 대형 보험사들의 수상한 움직임
일본의 대형 보험사들은 그냥 그런 금융기관들이 아닙니다. 일본 대형 보험사들은 투자자들의 보험금을 일본 국내외 국채나 주식, 부동산 등에 투자하고 있으며, 현금성 외화자산도 약 2조 달러나 보유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엔화환율의 방향성을 가장 잘 알고 있는 곳이기도 한데요.
6월 20일자 블룸버그 기사에 따르면 일본 보험사들의 엔화 가치 상승에 대한 헤징이 최근 10년 중 최저 수준으로 줄였다고 합니다. 쉽게 말해서 일본 보험사들은 당분간 엔화환율이 좋아지지 않을 거라 판단했다는 것인데요. 기사의 핵심적인 내용들은 아래와 같습니다.
- 일본 상위 9개 생명보험사의 엔헤지 비율은 최근 47%로 떨어졌고, 이는 2011년 9월 이후 최저 수준임
- 엔헤지 비율은 2020년 3월 최고치인 63%에 비해 크게 감소한 수치
- 역사적으로 엔화 약세는 일본 보험사들의 헤징 활동 감소와 관련이 있음 (물론 약간의 시차가 존재함 )
- 현재 추세는 보험사들이 앞으로 몇 달 안에 헤지 포지션을 더욱 줄일 수 있다고 판단했음을 시사
위 그래프에서도 과거 일본 보험사들이 약간의 시차를 두고 선제적으로 엔헤지를 했음을 감안하면, 일본 보험사들은 향후 상당기간 동안 엔화환율은 반등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내용만 보면 하반기에 엔화환율이 반등하는 것이 꽤나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하반기 중 엔화환율이 한번은 반등할 것 같은 이유
시각을 바꾸면 일본은 쓸 수 있는 총알이 많다
위에서 말씀드린 내용을 요약하면 결국 '일본은 엔화환율 방어가 어렵고, 엔화환율은 더 떨어질 가능성이 있다 (1달러 160엔보다 더 떨어질 가능성)'정도일 텐데요. 관련해서 제시한 근거는 아래와 같습니다.
- 일본은 국가부채가 많아서 기준금리를 인상할 수 없다
- 일본이 현재 엔화방어용으로 외환시장에 직접 개입할 수 있는 현금성 달러자산은 최대 1,500억 달러 정도(2024년 4월 말에 외환시장에 직접 개입했던 자금규모의 2배 수준)
- 엔화환율 변화에 민감한 일본 보험사들이 외화자산에 대한 엔헤지 비율은 역대 최저치인 47%까지 떨어짐(=일본 보험사들은 엔화가치가 상승하지 않을 거라 판단하고 있음)
기준금리를 인상할 가능성은 여전히 낮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일본이 엔화환율을 방어하는 것은 외환시장 직접 개입과 같은 형태의 방법일텐데요. 그러면 일본이 정말 지금 보유한 현금성 외화자산이 1,500억 달러 뿐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위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최근 시국은 정치논리가 경제논리를 우선하는 시대가 되었고, 보험사들은 어떤 기관들보다 일본정부에 우호적이고 정부정책에 민감한 집단입니다. 그렇다면 현재 엔헤지 비율이 47%로 역대 최저수준이란 정보는 뒤집어 생각하면, 나머지 53%의 외화자산은 시기와 방법에 따라선 일본 정부의 엔화환율 방어에 사용될 수 있다고 해석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런 관점이라면 최소 1조 달러가 넘는 외환액이 버티고 있다는 것이니, 일본은 올해 4월에 외환시장에 직접 개입했던 조치 정도는 최소 10번도 넘게 할 수 있습니다. 일본이 외환잔고가 부족해서 엔화환율 방어를 하지 못하는 상황은 발생하기 힘들다는 의미인데요.
결국 환율방어는 필요함
최근 일본이 달러 당 160엔에서 직접 개입방식으로 환율을 방어하는 것은 일본정부 입장에서도 현제 낮은 엔화가치는 큰 문제이고, 160엔 마지노선이 아니라 그 이상의 환율방어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생각합니다.
달러 당 160엔이란 엔화 약세 현상은 34년 만에 최저치이며, 장기적인 약세는 수입비용(특히 에너지)을 증가시켜 국내 물가상승에 압력을 가하고, 국민들의 소비능력을 감소시키며, 엔케리 트레이드와 같은 투기성 자금이 유입되는 등 다양한 문제점을 만들고 있습니다.
더구나 일본도 9월에 총재 선거가 있습니다. 현재 정권 지지율이 너무 낮아서 환율방어 정도로 원하는 지지율을 얻기는 힘들다고 생각합니다만, 어찌 되었든 선거 전에는 한번 환율을 방어하는 액션이 나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있습니다.
더불어 11월로 다가갈수록 바이든과 트럼프 중 어느 쪽을 지지해야 하는지 (계속 바이든과 옐런의 눈치를 보면서 미국을 지지할 것인지), 또 9월에 정말 미국은 기준금리를 인하할 것이며 만약 인하한다면 같은 시점에 엔화환율에 직접 개입해서 한번 엔화가치를 끌어올리려고 하지 않을지 등 시점이 문제일 뿐 엔화가치가 한 번은 반등하는 시점이 올 거라 생각합니다.
아쉽지만 그 시점이 언제인지는 나도 모르겠음
여러가지 이야기를 했습니다만, 결론적으론 저도 엔화환율이 언제 한번 반등할지 그리고 일본정부가 언제부터 적극적으로 엔화환율 방어 관련 액션을 취할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걸 알면 돈을 많이 벌 수 있겠죠...
그나마 개인적인 생각은 그 시점에 9월과 같이 빠르게 오진 않을 것 같다는 것인데요. 일본 선거는 환율방어 정도로 지지율을 높이기엔 너무 현재 지지율이 낮고, 역대 최저 수준의 일본 보험사들의 엔헤지 비율이 그렇게 빠르게 반등할 것으론 보이지 않으며, 결국은 미국 대선이 끝나야 일본도 명확한 정치적 기준으로 판단하기 쉽지 않을까 싶은데요.
결국은 이런저런 가정들을 계속 더 세우고, 생각했던 가정들이 맞는지 계속 검증하는 것 밖엔 방법이 없을 것 같습니다. 이 글을 보시는 분들도 투자에 대한 직접적인 참고보단 이런 이슈들을 한번 정도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길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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