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화환율이 최근 10년 중 가장 최저치입니다. 6월 달에 900원 밑으로 내려갔던 엔화환율은 벌써 5개월째 900원대에서 정체하다가 최근엔 870원이라는 역대급 최저치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6월 근처에 엔화상승에 배팅하는 ETF에 투자했거나, 엔화를 구매하신 분들이 많으실 것 같은데요. 최근 엔화환율의 하락원인과 반등시기에 대해서 정리했습니다.
아래 내용은 개인적인 견해를 포함하며, 특정 종목에 대한 매수/매도 추천이 아님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YCC정책 조정에도 엔화환율 방어에 실패
일본의 YCC정책에 대해서
현재 일본의 기준금리는 -0.1%입니다. 미국이 5.5%, 우리나라가 3.5% 임을 감안하면 여전히 엄청난 양적완화정책을 펼치고 있는데요. 여기에 일본은 2016년부터 수익률제어곡선(YCC) 정책으로 10년물 국채금리 상한선을 0%로 강제 관리하고 있었습니다.
10년물 국채금리는 기업들의 대출금리 및 일반 서민들의 부동산 대출금리와 연동됩니다. 국채금리 상한선을 0%로 강제 관리한다는 것은 일본중앙은행(BOJ)가 국가가 발행한 10년물 국채를 제 가격에 무제한 매입하여 국가재정에 직접적인 유동성을 제공하고, 기업 및 가계가 낮은 대출금리로 유동성을 확보할 수 있게 했습니다.
이렇게까지 적극적인 양적완화정책을 펼쳤던 목적은 일본이 심각한 디플레이션 상태로 경기가 침체되어 있어, 낮은 금리와 현금 유동성으로 가계와 기업의 소비와 투자를 일으켜 경기를 부양하고, 물가 및 임금을 상승시키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코로나를 지나면서 전세계적인 인플레이션으로 미국이 기준금리를 5.5%까지 올렸습니다. 코로나 이전까진 전세계적으로 주요 국가들의 기준금리가 낮아 일본의 양적완화가 문제 되지 않았는데요. 이젠 일본의 기준금리가 상대적으로 낮고 국채금리도 낮아 통화시장에서 엔화가치가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10년물 국채금리 상한선을 1%까지 조정
일본은 작년 말에 YCC정책 상한선을 0.5%로 올리면서 아주 소극적인 양적긴축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별 효과가 없자 올해 7월엔 0.7%로 상한선을 끌어올렸고 3개월 만에 1%까지 상한선을 올렸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YCC정책 수정정도로는 엔화가치 하락을 막을 수 없었습니다. 가장 큰 원인은 미국의 장기국채 금리의 상승입니다. 이제 시장에서는 일본이 하루 빨리 양적완화정책을 포기하고 기준금리를 올릴 것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올해 7월만 해도 YCC상한선을 0.7%로 조정했을 때 엔화환율이 소폭 방어되었으나, 이제는 YCC정책을 조정해도 엔화환율은 계속 하락합니다. 일본 중앙은행 총재도 7월엔 일본 10년물 국채 금리가 이렇게 빨리 1%대로 접근할지 몰랐다 밝혔습니다.
현재 달러-엔화 환율은 150엔 대로 역대급 수치를 기록 중입니다. 시장 전문가들은 달러-엔화환율이 150~160엔 수준이 최저 방어선 수준으로 현시점에서 더 엔화환율에 문제가 생기면 일본도 기준금리를 인상할 것이라 기대하고 있습니다. 일본이 곧 기준금리를 올릴거라 기대하는 추가적인 지표들이 있습니다.
일본 기준금리 인상을 전망하는 지표들
핵심 인플레이션 상승 추세
일본의 인플레이션 지표가 예상보다 크게 상승하고 있습니다. 가장 최근이었던 10월 일본 핵심 인플레이션 지표(식품을 제외하고 연료비를 포함하는 소비자물가지수)는 2.7%로 상승하여, 시장 기대치인 2.5%를 넘어섰습니다.
이 수치가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건, 일본정부는 10월부터 인플레이션이 둔화될 것이라 예상한다고 지속적으로 밝혔기 때문입니다. 이 전망은 일본이 단기적인 인플레이션 상승으로 기준금리 인하를 결정하지 못하는 주요 이유였습니다.
일본 정부는 최근 2024년 핵심 인플레이션 전망치를 1.8%에서 2.8%로 상향 조정했습니다. 기준금리를 -0.1%로 유지하는 핵심조건은 2%대 인플레이션 달성에 있었는데요. 이제 전망치가 2.8%로 조정되면서 일본도 기준금리를 인상할 시점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입니다.
1,130억 달러의 대규모 경기부양책 발표
기시다 총리는 11월 2일(목)에 1,130억 달러(약 17조 엔, 한화론 150조 원 정도) 규모의 대규모 경기부양책을 발표했습니다. 이것은 수십년간 물가상승을 경험하지 못했던 일본 국민들이 인플레이션으로 예상치 못한 생활비 상승 등 문제로 정부에 대한 불신이 커지는 것에 대한 해결 목적입니다.
17조 엔이나 되는 막대한 현금을 국민들에게 그냥 살포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번 경기부양책은 크게 아래 4가지 세부정책을 포함합니다.
1) 5조 엔 규모의 임시 소득세 및 주민세 감면
2) 저소득 가구에 대한 생활비 현금 지급
3) 석유 및 전기비 감면효과를 주는 보조금 지급 확대
4) 기업의 임금 인상 및 공급망 강화 지원
사실 경기부양책은 대부분 집권정부의 인기도에 큰 연관이 있습니다. 집권정부가 향후 정권유지를 위해 국민지지도를 높이기 위해 경기부양책을 당근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현재 기시다 정권의 지지율은 지난주 기준으로 33%밖에 되지 않습니다. 돈을 풀어야 할 이유가 명확한 거죠.
하지만, 이번 경기부양책이 일본국민들에게 잘 먹히지 않는 것 같습니다. 일본국민들은 줄어든 세금이 향후 다시 오를 것을 걱정하고, 향후 인플레이션이 상승하면서 실질소득 감소가 커질 것을 걱정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이번 경기부양책으로도 일본국민들이 뚜렷하게 소득상승 및 실질소득 증가효과를 느끼지 못한다면, 빠르면 내년 초에라도 일본은 기준금리를 인상하여 인플레이션을 잡아야 할 수 있습니다.
일본이 쉽게 기준금리를 올리지 못하는 이유
환율약화는 기업들에겐 이익
일본의 낮은 기준금리와 엔화약세는 일본기업들의 실적을 증가시킵니다. 일본기업이 내수보단 수출 위주로 돈을 벌기 때문입니다.
도요타는 어제 2023년 3분기 실적을 발표했는데, 분기 영업이익은 1조 4천억 엔으로 전년동기대비 2배 이상 증가했습니다. 이어 2024년 3월 말까지 영업이익 전망치를 3조 엔에서 4조 5천억 엔으로 50% 올렸습니다.
올해 전기차 판매가 부진하면서 도요타의 하이브리드 차량의 인기가 높아진 것도 있습니다만, 역대급 엔화환율 약세가 도요타 실적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도요타는 달러 대비 엔화가치가 1엔 하락할 때마다 1,800억 엔의 이익을 얻는다고 밝혔습니다.
이런 현상이 도요타 하나에 국한되진 않을 겁니다. 해외매출 비중이 높은 일본기업들의 실적이 대체적으로 좋아지고 있고, 올해 일본 주식시장이 역대급으로 다른 국가대비로 성장하는 것도 엔화환율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일본정부나 은행이 바라는 이상적인 모습은, 현재와 같은 양적완화 정책 하에서 일본 기업들이 좋은 실적을 내고, 이익의 상당 부분을 노동자들의 임금상승으로 돌려 물가상승을 상쇄하는 효과를 내는 것일 겁니다. 하지만, 일본은 정말 수십 년간 노동자 월급이 오르지 않았고, 현재 빠르게 임금상승을 진행 중입니다만 원하는 수준에 다다르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겁니다. (일본은 뭘 해도 진행속도가 늦습니다.)
그럼 언제쯤 엔화환율이 올라갈까?
1990년대 외환정책을 총괄했던 일본 전 재무관 사키키바라는 현재 시점에 엔화환율 최점이고 2024년 여름에는 엔화환율이 달러 당 130엔까지 상승할 거라 전망했습니다. 대략 10% 이상 상승하는 수치인데요. 근거는 내년도 미국경제는 침체가 예상되지만, 일본경제는 상대적 성장세로 엔화가치가 상승할 거라는 건데요.
솔직히 이런 얘기를 100% 믿으면 안 됩니다. 어떤 예상도 거시경제를 정확히 맞추긴 어렵고, 일본의 제로금리는 하루이틀 유지된 정책이 아니기 때문에 일본의 금리인상도 꽤 시간이 걸릴 수 있다 보는 게 맞을 겁니다.
다만, 현재 엔화가 최저점에 가깝다는 것엔 저도 개인적으로 동의하는데요. 내년 상반기까지 15~20% 정도의 수익을 목표로 엔화 ETF나 엔화에 직접 투자하면 적어도 잃지 않는 투자결과는 얻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물론 개인적인 의견이므로 투자여부는 각자의 판단으로 신중하게 결정하시기 바랍니다.
댓글